[명화 이야기] 자유를 위해 총을 든 여신, 프랑스의 진짜 얼굴 –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프랑스 파리를 떠올릴 때, 혹은 '자유'라는 가치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 우리는 항상 한 장의 그림과 마주하게 됩니다. 한 손에는 프랑스 삼색기를, 다른 한 손에는 장총을 든 채 시체로 가득한 바리케이드 위를 당당히 전진하는 상반신의 여인. 오늘 소개해 드릴 여덟 번째 명화는 19세기 낭만주의 미술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최고 걸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iberty Leading the People)⟩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역동적인 이 대작은 프랑스라는 국가의 정체성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이 그림은 화가가 직접 목격했던 피비린내 나는 혁명의 연기와 그 속에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뜨거운 외침이 담긴 생생한 역사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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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쿠르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 작품 소개

그림의 한가운데서 민중을 이끄는 여인의 이름은 '마리안느(Marianne)'로,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들라크루아는 그녀를 고상하고 우아한 대리석 조각상처럼 그리지 않았습니다. 혁명의 불길 속에서 탄 가루가 묻은 살결, 바람에 휘날리는 거친 드레스, 그리고 민중과 함께 발을 맞춰 걷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했죠. 

그녀의 뒤를 따르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들라크루아의 천재적인 연출력이 돋보입니다. 여신의 바로 왼쪽에서 실크 모자를 쓰고 정장 코트를 입은 채 장총을 든 남성은 부르주아(지식인·자산가) 계급을 상징합니다. 

그 반대편에서 칼을 휘두르는 남성은 노동자 계급을, 여인의 오른편에서 양손에 권총을 든 채 돌격하는 소년은 어린 부랑아(하층민 아이들)를 상징합니다. (이 소년은 훗날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 속 소년 혁명가 '가브로슈'의 모티브가 되기도 합니다.)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모든 계급이 '자유'라는 하나의 가치 아래 뭉쳐 전진하는 순간을 극적으로 포착해 낸 것입니다. 




2. 작품의 배경 : 단 3일 만에 왕을 끌어내린 '7월 혁명' 

이 그림이 그려진 배경은 1830년 7월, 파리에서 일어난 '7월 혁명'입니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가 끝나고 다시 왕정으로 복고된 프랑스에서는 샤를 10세가 왕위에 올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듯 의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탄압하며 독재 정치를 펼쳤습니다. 

이에 분노한 파리의 시민들은 1830년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단 3일 동안 격렬한 바리케이드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이 짧고 뜨거웠던 사흘간의 전투로 결국 샤를 10세는 왕위에서 쫓겨나 망명길에 오르게 되죠. 

화가 들라크루아는 비록 겁이 많아 직접 총을 들고 바리케이드에 서지는 못했지만, 파리 시내를 뒤덮은 총성과 자욱한 화약 연기를 보며 심장이 터질 듯한 예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조국을 위해 직접 싸우지는 못했을지라도, 최소한 조국을 위해 그림을 쓸 수는 있습니다"*라고 적으며 미친 듯이 캔버스에 붓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3. 알고 보면 더 보이는 이야기거리 (비하인드) 

정부에게 외면당하고 지하 창고에 갇혔던 명화 :

혁명이 성공한 후, 새로 왕위에 오른 루이 필리프 1세는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들라크루아의 이 그림을 거금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궁전에 걸리지 못하고 곧바로 어두운 지하 창고로 직행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왕의 입장에서 보니 그림이 '너무 선동적이고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림 속 민중들이 너무나 당당하게 총을 들고 왕정을 무너뜨리는 모습은, 새로운 왕에게 "너도 잘못하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거대한 경고장처럼 보였던 것이죠. 결국 이 그림은 왕정이 완전히 무너지고 공화국이 들어선 후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와 대중 앞에 당당히 걸릴 수 있었습니다.

그림 속에 숨겨진 화가의 자화상 : 

미술사학자들 사이에서 흥미롭게 속삭여지는 비하인드 중 하나는, 여신의 왼쪽에서 멋진 실크 모자를 쓰고 총을 든 채 전진하는 남성이 들라크루아 본인의 자화상이라는 설입니다. 비록 실제 혁명의 대열에 합류해 피를 흘리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뜨겁게 민중들과 함께 바리케이드 위에 서 있고 싶었던 화가의 부채감과 열망이 투영된 인물이라는 해석입니다. 




4. 에필로그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완성된 지 2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프랑스 프랑(Euro 도입 전) 지폐와 우표를 장식하며 불멸의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발밑에 쌓인 동료들의 시체를 딛고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던 1830년 파리 시민들의 간절함. 들라크루아는 거친 붓 자국과 타오르는 색채를 통해, 자유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와 희생을 통해 쟁취하는 것임을 인류의 역사에 각인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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