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해골을 닮은 핏기 없는 얼굴의 남자가 눈과 입을 쩍 벌린 채 귀를 막고 서 있는 이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 밈(meme)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놀란 표정을 지을 때 단골로 패러디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미지 중 하나죠. 바로 노르웨이가 낳은 위대한 표현주의 거장,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상징인 ⟨절규 (The Scream)⟩입니다.
오슬로 국립미술관의 가장 삼엄한 삼중 유리 속에 보호되어 있는 이 그림은 대중에게 유쾌한 복제 이미지로 소비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진짜 실체는 전혀 유쾌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기괴한 불안감이 전해지죠. 화가가 직접 겪었던 극심한 공황장애와, 현대인이 품고 사는 실존적인 공포를 온전히 녹여낸 핏빛 가득한 기록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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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크의 절규 |
1. 작품 소개 :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비명을 막고 있는 유령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이 하늘을 향해 찢어지는 듯한 "아악!" 소리를 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 그림의 진짜 영어 제목은 ⟨The Scream of Nature⟩, 즉 '자연의 비명'입니다.
그림 속 남자는 스스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뚫고 쏟아져 나오는 거대하고 끔찍한 비명 소리를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며 귀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뭉크는 이 숨 막히는 공포를 시각화하기 위해 배경의 하늘과 바다를 붉은색과 푸른색의 요동치는 곡선으로 그렸습니다. 마치 끔찍한 소음이 파도처럼 밀려와 온 세상을 뒤흔드는 듯한 연출이죠. 반면 여유롭게 다리를 걸어가는 저 멀리 두 명의 동행자는 이 비명을 전혀 듣지 못합니다. 오직 주인공 한 사람만이 세상과 단절된 채 극도의 고독과 공포에 사로잡혀 일그러진 유령 같은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2. 작품의 배경 : 피오르 선착장 위에서 찾아온 환각과 공황발작
이 그림은 뭉크가 어느 날 저녁, 친구 두 명과 함께 노르웨이 오슬로 피오르가 내려다보이는 '에케베르그' 언덕길을 걷다가 겪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했습니다. 뭉크는 당시의 상황을 자신의 일기에 소름 돋을 정도로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한쪽에는 도시가 있고 내 아래에는 피오르가 있었다. 피곤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 … 해가 저물면서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을 느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고, 공포에 떨며 귀를 막았다."
당시 뭉크가 겪은 이 증상은 '공황발작(Panic Attack)'과 환각 증세였던 것 같습니다. 뭉크의 가문은 비극적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는 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남은 여동생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으며, 아버지마저 우울증으로 사망했죠. 뭉크에게, 노을빛으로 물든 오슬로의 하늘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대지가 흘리는 핏물처럼 다가왔던 것입니다.
3. 알고 보면 더 보이는 이야기거리 (비하인드)
하늘 구석에 숨겨진 뭉크의 은밀한 낙서 :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소장된 ⟨절규⟩의 왼쪽 상단 붉은 하늘 면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필로 아주 작게 쓰인 낙서 한 줄이 발견됩니다.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Kan kun være malet af en gal Mand!)"라는 문장이죠. 오랫동안 이 낙서가 반대파 평론가나 관람객의 훼손 행위인 줄 알았으나, 최근 필적 감정을 통해 뭉크 본인이 직접 쓴 낙서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림을 발표한 후 "정신병자의 쓰레기 같은 그림"이라는 비난에 시달리던 뭉크가, 씁쓸함과 조롱을 담아 스스로 자신의 그림 위에 새겨 넣은 천재의 슬픈 방어기제였습니다.
미술품 도둑들이 가장 사랑한 타겟 :
⟨절규⟩는 미술사에서 가장 자주 도난당한 비운의 명화이기도 합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개막식 날, 도둑들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사다리를 타고 침입해 단 50초 만에 이 그림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그들이 그림이 있던 자리에 "허술한 보안 덕분에 잘 훔쳐 갑니다"라는 쪽지를 남긴 일화는 유명하죠. 다행히 몇 달 뒤 회수되었으나, 2004년에는 또 다른 버전의 ⟨절규⟩가 뭉크 미술관에서 대낮에 총기 무장 괴한들에게 강탈당했다가 2년 만에 심각한 얼룩을 입은 채 돌아오는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4. 에필로그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가 세기를 넘어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공감을 얻는 이유는, 그림 속 유령 같은 존재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마음속 불안'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고 거대한 도시 속에서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밀려오는 소외감과 불안에 귀를 막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초상인 것이죠.
광기와 공포라는 지독한 마음의 병을 회피하지 않고, 붓을 들어 정면으로 응시하며 불멸의 예술로 승화시킨 거장. 뭉크가 흔들리는 선으로 그려낸 비명은, 수많은 불안 속을 걸어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너만 외롭고 무서운 게 아니다"라는 깊은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