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이야기] 천재의 질투심이 만들어 낸 깨진 유리 파편 같은 걸작 –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미술사 연표에서 1907년은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당시 스물다섯 살에 불과했던 야심만만한 스페인 청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전 세계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문제작 ⟨아비뇽의 처녀들 (The Demoiselles d'Avignon)⟩이 서 있었죠. 

가로세로가 각각 2.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이 그림은 오늘날 '현대 미술의 위대한 시작'이자  '아름다운 반역'으로 칭송받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처음 작업실에서 공개되었을 때, 피카소와 가장 가까웠던 동료 예술가들조차 "피카소가 미쳐버렸다"며 경악과 혐오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미(美)의 기준을 깨부순 이 파격적인 그림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 작품 소개 : 원근법의 장례식, 사방에서 조각난 육체들 

그림 속에는 다섯 명의 여인이 나체로 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르네상스 미술에서 보던 우아하고 부드러운 여신들의 몸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여인들의 몸은 마치 도끼로 찍어낸 듯 날카로운 삼각형과 사각형의 파편으로 조각나 있죠. 

피카소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후 서양 미술을 400년 동안 지배해 온 '원근법'과 '단일 시점'을 완전히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그림 맨 오른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여인을 가만히 봐주세요. 그녀의 몸은 분명 뒤를 돌아앉아 있는데,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코는 옆모습인데 눈은 정면을 보고 있죠. 화가가 사물을 앞, 옆, 뒤 등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바라보고, 그 조각들을 한 화면에 억지로 구겨 넣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형태를 완벽하게 파괴해 버린 이 기묘한 기법이 바로 현대 미술의 판도를 바꾼 '입체주의(Cubism)'의 탄생이었습니다. 




2. 작품의 배경 : 홍등가의 어두운 골목과 아프리카 가면 

이 그림의 제목에 등장하는 '아비뇽'은 프랑스의 아름다운 도시 아비뇽이 아닙니다. 당시 피카소가 살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유흥가이자 사창가였던 '아비뇽 거리(Carrer d'Avinyó)'를 뜻합니다. 즉, 그림 속 처녀들은 우아한 고전 속 요정이 아니라, 하루하루 몸을 팔아 살아가던 홍등가의 매춘부들이었던 것이죠. 

피카소는 왜 이토록 거칠고 추악한 소재를, 그것도 괴기스러운 형태로 그렸을까요? 답은 그가 파리의 트로카데로 박물관에서 마주한 '아프리카 전통 가면'에 있었습니다. 

그림 오른쪽에 서 있는 두 여인의 얼굴을 보면,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부족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문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날 것 그대로의 욕망, 그리고 당시 피카소를 평생 괴롭혔던 성병(매독)에 대한 공포와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죠. 




3. 알고 보면 더 보이는 이야기거리 (비하인드) 

동료들의 배신과 9년간의 은둔 : 

피카소는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무려 800장이 넘는 스케치를 그리며 방에 틀어박혔습니다. 마침내 그림을 완성하고 절친한 동료였던 화가 앙리 마티스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작업실로 초대했죠. 하지만 마티스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근대 미술에 대한 모욕이자 악독한 장난"이라며 불같이 화를 냈고, 피카소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스타인마저 고개를 저었습니다. 주변의 엄청난 조롱과 비난에 충격을 받은 피카소는 이 그림을 둘둘 말아 작업실 구석에 처박아 두었고, 그림은 무려 9년이 지난 1916년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처음 나오게 되었습니다. 

라이벌 마티스를 이기기 위한 천재의 질투심 : 

사실 이 그림이 이토록 파격적으로 변한 데는 짜릿한 라이벌 의식이 숨어 있었습니다. 당시 파리 화단에서 가장 잘나가던 거장은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였습니다. 마티스가 ⟨삶의 기쁨⟩이라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작으로 찬사를 받자, 질투심에 눈이 먼 피카소는 "마티스가 시도한 아름다움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나는 아예 미술의 판을 새로 짜겠다"고 결심합니다. 마티스의 화려한 부드러움에 대항하기 위해 일부러 거칠고 날카로우며 깨진 유리창 같은 파격을 선택한 것이 결과적으로 미술사를 바꾸는 대혁명이 된 것입니다. 




4. 에필로그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우리에게 "예술은 눈에 보기에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그려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피카소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날 가공의 파괴력과 생명력을 시각화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넘어서, 화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개념과 구조를 그리는 시대를 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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